모두발언
제10차 의원총회 모두발언
제10차 의원총회 모두발언
□ 일시: 2012년 7월 30일 16:00
□ 장소: 국회 예결위회의장
■ 이해찬 대표
올해가 2012년이다. 생각해보면 제가 꼭 만40년 동안 이 나라 민주화를 위해 여기까지 왔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 대학교수가 되려고 공과대학에 들어갔다 포기하고 물리과 대학에 새로 입학했다. 그 해가 1972년이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그해 가을 유신이 선포됐다. 10월 16일이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교수가 되려던 길은 가지 못하게 되고 유신체제를 타파하는 일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왔다. 꼭 만40년이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여러 가지 기구한 과정을 많이 겪었고,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사랑도 많이 받으며 여기까지 왔다. 오늘 생각해보면 참 어처구니가 없는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렇게 40년 동안 이 나라 민주화를 위해서 많은 선후배 동지들과 함께 싸워왔는데 그중 벌써 유명을 달리한 분도 많다. 사형을 당한 선배도 있고, 고문을 당해서 저승으로 가신 분도 있고, 암에 걸려서 유명을 달리한 선후배 동지 등 많이 있다.
그렇게 살아왔는데 19대 국회 개원국회에서 원내대표를 구속시키겠다고 하는 정권은 처음 봤다. 어떻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19대 국회 개원국회에서 제1야당의 원내대표를 구속시키겠다고 나오는 검찰이 대한민국 검찰인지 어느 나라의 검찰인지 판단이 안 선다. 그렇게 40년을 싸워왔는데도 이 나라 검찰이 아직도 권력의 시녀노릇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그리고 집권을 하겠다는 새누리당이 검찰의 체포영장이 국회에 오기도 전에 전당대회 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제1야당의 원내대표를 꼭 구속시키겠다고 작전을 짜고 있다. 우리보고 방탄국회라고 하는데 정두언 의원은 본인이 돈을 받은 사실을 시인했음에도 새누리당이 반대해서 체포를 못하게 하지 않았나. 지금 새누리당이 방탄국회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혐의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박지원 원내대표를 구속시킨다고 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나라 검찰을 제대로 개혁하지 않고서는 언제 누가 또 끌려갈지 모른다. 저에 관한 수사도 여러 차례 했다. 계좌추적을 엄청 했다. 제가 노무현대통령 기념사업회 준비위원장을 맡을 때 모금을 제 이름으로 했다. 그 계좌를 다 추적했다. 벌써 몇 년째인가. 이런 검찰이 이번 대통령선거를 새누리당 쪽으로 운동해주고 있는 것 아닌가. 여기 계신 한명숙 전 총리께서 서울시장 후보로 유력해지니 못하게 막으려고 갑자기 2009년 12월에 허위사실을 유포해서 언론인들이 몇 달을 우려먹었나. 서울시장 끝날 때까지, 끝나기 직전 4월에 무죄가 날 듯 하니 또 하나 조작하고, 그래서 결국 서울시장 떨어뜨리지 않았나. 그런데 그것을 이번 대선에 또 하겠다는 것인가. 우리당 의원에 대해서 계좌추적을 여러 명하고 있다고 한다. 하나를 집어넣고 또 하나 하고, 이렇게 선거 끝날 때까지 우리당에 대해서 계속 공작을 해서 선거이슈를 이쪽으로 끌고 가려는 것이다. 우리는 이거 방어하다 선거 끝난다.
1992년에 이선실 사건으로 대통령 선거 완전히 죽을 쒔다. 우리당 의원 중 일부가 혐의 있다고 해서 전부 우리당 것으로 만들어서 92년 선거이슈가 온통 이선실 사건 밖에는 기억이 안 난다. 이렇게 검찰이 이번 대통령선거를 이끌고 가려는 것을 절대로 우리가 용납해선 안 된다. 이제 그런 시대가 아니다. 21세기에 들어와서 벌써 우리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의 골간을 많이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저질공작에 당하지 않을뿐더러. 우리 국민들도 정치의식이 성숙해서 당하지 않는다. 비록 검찰은 자기 수준에서 그렇게 할지 몰라도 이제 국민들은 그런 수준에 넘어가지 않는다. 다만 일시 현혹될 뿐이다. 저는 분명히 말씀드린다. 적어도 검찰이 확실한 증거와 혐의가 있다면 기소를 하라. 기소해서 법정에서 정정당당하게 다툼을 하면 될 것 아닌가.
실제로 한명숙 전 총리가 지난번 재판을 받을 때 검찰에 가서 일체 대꾸를 안했다. 대꾸를 안 하니까 자기들이 가지고 나온 게 법정에서 다 깨졌다. 대꾸하면 대꾸를 근거로 혐의사실을 다시 조작한다. 구속되어있는 피의자 조사를 가지고서 조작한다. 자기 목숨만 살려고 검찰이 하란대로 하는 것이다. 대꾸를 하면 공작을 해온 사람들이다. 똑같이 이번에도 그런 수법을 쓰려는 것이다. ‘당당하면 왜 안 나오느냐.’하는데 당당하니까 안 나가는 것이다. 법정에서 얼마든지 싸울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정말로 기소할 자신이 있다면 빨리 기소하라. 그리고 형사수사법 원칙이 불구속이 원칙이다. 증거인멸이나 도주우려가 있을 때만이 구속을 하는 것이다. 증거는 검찰이 가지고 있다는 얘기고 도주우려는 아예 있지도 않다. 왜 기소를 못하나. 저는 우리당의 명운을 걸고 이런 검찰에 당당히 맞서 싸우겠다.
제가 지금 당의 대표다. 이해찬이 당의 대표다. 민주화 운동을 40년 해오고 이 나라를 바로잡겠다고 살아온 사람이 이런 검찰공작에 굴해서 우리 원내대표를 잡아가는 것을 두 눈 뜨고 보겠는가. 제 명예를 걸고, 민주당의 명운을 걸고 국회의 존엄성을 위해서 반드시 막아내겠다. 우리가 이를 못 막으면 국민들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할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자당의 원내대표 하나도 제대로 보호를 못하면서 어떻게 이 나라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겠다고 감히 말하겠는가. 저는 검찰과 싸울 생각이 없다. 저는 민간검찰하고 싸워 본적이 없다. 항상 계엄령 때 군 검찰하고만 싸웠다. 내란 음모로 두 번 구속되고 고문 받고 군법정에서만 싸웠다.
이제 더 이상 검찰이 자각하지 못하고 정치공작을 계속 한다면 제 이름을 걸고, 명예를 걸고 검찰을 막아내겠다. 그렇게 해서 이번에 정권을 우리가 집권해서 검찰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나라가 만들어지고 나서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개혁되지 않은 몇 곳이 있다. 오히려 대법은 참여정부때 사개추위를 해서 공판주의로 많이 바꿨다. 공판주의를 도입해 정말로 검찰의 피의조사만 가지고서는 유죄를 할 수 없는 제도를 우리가 만들었다. 법원은 그래도 좀 바뀌었다. 제일 안 바뀐 곳이 검찰이다.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 보라. 그런 사람을 국회 임명동의안으로 보낸다는 게 말이 되는가. 제가 청문회를 직접 하지 않았지만 과정을 지켜보면서 사법부를 모욕하고 국회를 모욕하는 것이다. 그래놓고 검찰이 각종 로비하지 않았나. 저도 로비를 받았다. 통과시켜달라고. 하지만 안 된다고 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을 국회에서 동의하겠나. 그에 대한 보복성 의사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안 된다. 검찰을 이대로 용인한다면 우리가 국민 앞에 나설 수 없다.
이 자리에서 우리 의원님들이 충분히 논의해서 정말로 이 자리가 검찰개혁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을 갖고 충분한 논의를 해 결의를 모아내야 한다. 지금 아마 법무부에 의견서가 가 있는 것으로 안다. 내일쯤 국회에 도착해서 1일 본회의 보고를 하고 2, 3일 양일간 처리하려는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 새누리당이 전대 일정까지 변경하면서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오기도 전에 벌써 작전계획을 검찰과 날짜까지 협의해 확정했다. 오늘 이 자리가 정말로 우리당의 명운을 거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결의를 가지고 충분히 논의해서 좋은 지혜를 만들어 반드시 막아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 박지원 원내대표
먼저 의원, 당원동지,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치게 된 것에 대해 죄송한 말씀을 올린다.
오늘까지 32일째다. 매일 TV, 라디오, 인터넷에 시시각각으로 ‘이상득’은 간 곳 없고 ‘박지원’만 보도된다. 석간과 조간도 하루도 빠짐없이 ‘박지원’이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저는 결백하기 때문에 주창을 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린다. 저는 의원들이 저를 믿어주리라 믿는다. 어떠한 경우에도 저는 그런 사실이 없기 때문에 줄기차게 얘기 했다. 정치검찰의 말은 매일 바뀌었다. 이 언론에 찔끔, 저 언론에 찔끔, 저를 굴복시키려고 했지만 저는 한결같이 같은 사실을 얘기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을 결정해야 될 날이 다가오고 있다. 저는 다시 한번 저의 결백을 주창한다. 우리당내 율사 의원들이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말라. 그 얘기가 곧 검찰에서 준비하는 자료에 보탬이 된다’고 해서 제가 지금까지 침묵을 하고 이 자리에서도 구체적인 말씀을 올리지 않지만, 제가 몇 년간 고초를 겪고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저는 자신하고 그런 일이 없기 때문에 이 박지원의 명예와, 민주당의 명예, 그리고 우리의 집권을 위해 걸어가겠다.
저와 함께 가시자. 저도 당을 위해 지난 18대처럼 19대에서도 열심히 하겠다. 의원들의 많은 성원과 지원을 바란다.
■ 유성엽 의원
의총에 들어와 보니 기자들이 많아서 유성엽의 복당이 전북에서만 관심사가 아니라 서울에서도 관심사구나 생각하며 들어왔는데 그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저를 받아주신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여러 선배 의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오늘 이 자리에서도 겪고 있는 민주당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에 작은 힘이나마 최선을 다해 보태겠다는 다짐의 말씀을 드린다.
사실 집나간 지 4년4개월 만에 들어오니 어려움도 많고 고초도 많이 겪었지만 크게 허물을 탓하지 않고 따뜻하게 맞아주신 선배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 함부로 집 나가지 않겠다는 다짐의 말씀도 거듭 드린다.
불과 5개월 후면 정권을 되찾아 와야 하는 중요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있고 이 자리에서도 논의가 시작되고 있지만, 이 나라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켜낼 것이냐 하는 과제도 발등에 떨어져 있다. 이 순간부터 힘을 다해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빼앗긴 정권을 되찾아오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거듭 감사드리고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의 말씀을 드린다.
■ 한명숙 의원
저의 고통스럽고 쓰라린 경험을 또다시 이야기하는 시대가 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얘기를 함께 나눌 수밖에 없는 잔혹한 시대, 민주주의 파괴된 시대를 맞게 되었다.
언론을 통해 제가 겪은 얘기들을 간간히 들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사실 내용은 잘 모르실 것 같다.
2009년 12월 4일 조선일보 1면에 ‘한명숙 수만불 수수’라고 탑으로 났다. 깜짝 놀라서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도무지 무엇을 가지고 그러는가 그래서 그 내막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것이 2010년도에 있었던 지방선거 민주당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던 때였다. 제가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갈 것이냐 말 것이냐로 스스로 결정하지 않은 때였다. 국무총리 한 사람이 서울시장 출마를 해야 하는가. 돈도 없고, 원외였고 특별히 꼭 서울시장 나가야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항간에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었을 때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2010년 3월 제가 결국 재판을 받게 됐다. 사실 저는 어찌 보면 원외로 정계를 거의 은퇴해야 될 시기였기에 국민에게 잊혀져있었다. 그런데 정치검찰이 제발에 족쇄를 채우는 바람에 일약 대스타가 되었다. 국민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이 사건에 대해 초미의 관심사를 가지고 들여다보게 되었다. 터무니없는 조작극에 당당했지만 참으로 괴로웠다. 이 점을 특별히 염두에 두고 들었으면 좋겠다. 돈을 받을 줄도 모르고, 돈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대서특필을 하며, 그 이후에 피의사실 공표를 수도 없이 했다. 32일 동안이나 박지원 대표를 언론에 대고 말하니 이상득 사라지고 박지원 남았다고 했듯이, 허구헌날 언론에 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깨끗할 것 같은 한명숙이 돈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리당 의원들도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저는 당당했기 때문에 재판 받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사형을 주겠는가, 무기를 주겠는가, 나는 떳떳하다. 얼마든지 기소해서 재판하자는 것이었지만 검찰의 이런 행위가 반복해서 피의사실을 언론을 통해 내보내면 국민들도 동지들도 돈을 받았을 것이니, 저렇게 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 자체가 두려운 것이다. 대인기피증도 생기고, 사람 만나기 싫고, 그때 저를 구해준 사람이 이해찬 대표다.
이 사건이 신문에 보도 되자마자 의원들이 이해찬 총리를 찾아가서 “한명숙은 이제 끝났다. 서울시장 후보는 다른 사람으로 결정하자. 총리님이 나가면 어떻겠냐”고 했다고 한다. 이총리가 그때 후일담으로 들은 얘기인데“어떻게 자네들이 정치를 이렇게 하는가. 이렇게 배웠는가. 한명숙 개인의 사건이 아니다. 가장 깨끗하다고 국민들에게 알려져 있는 한명숙을 통해 이 진영을 지방선거가 있는 이 시기에 무너뜨리려는 공작이다. 정치를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한명숙이라는 벽을 우리가 뚫지 못하면 서울시장 후보로 나가도 진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문제로 보지 말고 민주진영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자”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야당 대표들이 모이고, 민주주의를 위해 일했던 많은 훌륭한 분들이 함께 모여 대책위를 만들어 힘을 실어줬다. 이것이 개인적으로 있으면 무너질지도 모를 뻔 했던 그 상황을 본질로 돌아가 하나의 역사성으로 보고, 큰 정치로 봤을 때 또다시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 힘에 의존해 버텼다. 그 힘이 없었다면 버틸 수 없었다.
여기에 선거법 문제나 여러 가지 문제로 고통 받은 분들 많았을 것이다. 이런 문제를 개인적으로 버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박지원 대표가 당당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굉장히 힘들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여기서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할 것은 이번 사건이 박지원 개인의 것이냐, 박지원대 검찰로 갈 것이냐 아니면 대선을 앞두고 MB정권과 새누리당과 검찰이 삼각편대가 돼서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한 하나의 의도된 공작정치로 볼 것이냐의 관점이다. 관점을 바로 세워야 한다. 박지원 대표는 원내대표인데 원내대표는 우리 원내 사령탑이다. 전쟁할 때 사령관의 목을 치면 무너진다. 만약에 이 사건을 개인적인 문제로 보면 박지원도 죽고 민주통합당도 망한다. 그래서 이번에 이 사건을 결국 우리가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하기 위한 하나의 밑거름으로 봐서 이것을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서 뚫고나갈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두 번째 관점은 이것이다. 뭐가 있으니깐, 냄새가 나니깐, 아니 뗀 굴뚝에 연기날까라고 보통 생각한다. 정치인들도 걸리면 언제나 나는 당당하다 결백하다고 하지만 끌려 들어가면 나중에 밝혀져서 유죄를 받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연코 말씀드린다. 무죄여도, 결백해도, 혐의가 없어도, 궁박한 사람을 궁지에 몰아서 진술 하나를 얻어내면 그 진술 하나로 체포한다. 그 진술 하나로 끌어가고, 구속시킨다. 그래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정치검찰이 저에게 무죄여도, 혐의가 없어도,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궁박한 처지로 한사람을 몰아서 진술 하나를 만들어서 기소했다. 그리고 괴롭혔다. 그런데 결과는 무죄다. 물론 아직 사건이 끝나지 않았다. 저는 지금 당사자로서 걱정은 된다. 이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할 수 없는 일을 항상 하는 사람들이라서 어떻게 할까 걱정되지만 혐의가 없어도 끌어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아셨으면 좋겠다.
한 나라의 총리까지 지낸 사람을 이렇게까지 고통스럽게 교묘하게 정치탄압을 하는데 무죄를 받았다. 그러나 무엇으로 견뎠나. 총리였는데도 고통당하는데 수많은 보통의 국민들은 얼마나 고통을 당하겠나. 많은 사람들의 경우 이런 사건의 올가미에 들어가면 100% 뒤집어쓴다. 특혜 받은 사람으로서 잘 견뎌내야 한다.
노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지켜드리지 못해 미안했다. 그 때 용기도 없었고, 양심도 끝끝내 잘 지켜 내지 못해서 대통령을 그냥 보내 한이 맺혔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유언처럼 남기신 마지막 말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문상객 5-600만이었다. 가슴이 절절하게 찾아오는 문상객이 와서 철철 우는 문상객이었다. 그런데 그 문상객 중에서 1/10인 50만명이라도 그럴 수 없다고 목소리를 냈다면 노무현 대통령 절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 민주주의가 없을 때는 투쟁해서 지키고, 이뤄진 다음에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한다. 그래서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한다, 방관하는 자는 악의 편이다’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말씀이 우리 가슴속에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검찰개혁 해야 하는데 검찰개혁 할 때 민주주의를 위해 하자고 말한다. 거꾸로 말하고 싶다. 검찰을 위해 검찰개혁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이 검찰을 신뢰하는 사람 거의 없다. 국민의 신뢰를 100% 못 받는 검찰이 얼마나 괴롭겠나. 그리고 존재할 이유가 없다. 질서가 무너짐으로 나라 기둥 무너지는 것이다. 검찰 자신들을 위해서 우리는 검찰개혁을 해야 한다. 이번에 박지원 대표 지켜야 한다. 그리고 박지원 대표는 박지원 개인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일이다. 127명이 함께 힘을 합쳐 단결해 뚫을 수 있다면 정권교체 할 수 있다. 해낸다. 만약 박지원 대표 개인적인 문제로 개인이 해결하라고 하면서 박지원 사령관을 무너뜨리면 박지원 대표도 죽고 우리도 죽는다. 명심하고 함께 손잡고 이 어려운 마지막 관문을 뚫고 나가기를 정말 바란다. 열심히 하겠다.
■ 김현미 의원
19대에 와서 많은 분들이 저에게 ‘김현미가 변했다’고 하신다. 이렇게 눈물을 흘리는 것이 19대 국회 첫 사진이고 싶지 않았다.
저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정동영 후보의 대변인을 했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 말기에 김윤옥 여사의 시계사건이 있었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검찰에 출두하라고 많은 압력이 왔고 총선기간에도 있었다. 그렇지만 저는 대선 때 이런 일이 가끔 있으니까 설마 상대후보의 대변인을 어떻게 하랴 생각했다. 그리고 잘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도 했었다. 양당의 교섭단체 대표들끼리의 협상도 있었지만 정봉주 의원은 이미 기소돼서 재판을 받고 있었고 유일하게 기소된 사람이 저였다. 그래서 저는 제가 시계사건으로만 기소된 줄 알았는데 가보니 제가 낸 논평을 쌓아놓고 모든 논평에 밑줄을 그어 한나라당에서 열 몇건을 고발했었다. 그리고 세 건이 기소됐다. 한 건은 시계사건이고, 한건은 이명박 후보가 가진 건물이 성매매 업소에 임대되어 있다는 기사를 브리핑한 것, 또 하나는 이명박 후보의 차명계좌 의혹에 관한 것이었다. 1심에서 시계사건이 무죄가 나고 두 가지 사건이 500만원 벌금이 됐다. 기사들은 전부 ‘김윤옥 여사 시계사건, 김현미 무죄’로 뽑혔다. 많은 국민은 김현미가 무죄가 나서 김윤옥 여사의 시계가 사실이 아닌가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추석이 지난 어느 날 대검 중수부에서 조사받으러 나오라고 전화가 왔다. 처음에는 장난전화인줄 알았는데 진짜 대검 중수부였다. 다음날 출두를 하라고 했지만 영문도 모르고 당에도 보고해야 하는 등 하루 이틀 정도의 준비할 시간을 달라고 했고, 하루정도 늦었더니 언론에 ‘김현미, 정치자금수수’로 대서특필이 됐다. 저는 모든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겨우겨우 대학동창 친구와 함께 대검 중수부를 들렀다. 대검 중수부는 웬만한 정치인은 구경도 못한다. 이런 제가 대변인, 부대변인을 하면서 하도 한나라당에서 고소를 많이 당해 수도권에 위치한 지방검찰청은 안 가본 곳이 없다. 대검 중수부 11층 조사실은 일반검찰청 조사실과는 정말 다르다. 12시 반까지 조사를 받고 나오니 뇌물죄가 됐다. 4년 전 어느 날 몇 시 누구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4년 전 어느 날 제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증빙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 과정에 시계사건 1심이 무죄가 났었는데 유죄가 돼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받고 성매매 업소 임대사건은 청와대에서 성매매 업소로 입주한 사람에게 우리와 상관없다는 명의변경의 소장을 내 청와대의 명의변경 소장이 저에게 증거물로 와 무죄가 됐고, 차명계좌 의혹도 무죄가 됐다. 하루는 재판받고 하루는 조사받고 하루는 변호사 사무실을 오가며 2년을 지냈다. 그 와중에 친정아버지는 암이 재발해 돌아가시고 아이는 겨우 중학교 3학년이었다. 중학교 3학년 아이한테 엄마가 내일 신문에 나오니까 놀라지 말라고 하는 그 마음이, 그런데 그 와중에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는데 나라도 죽겠다는 생 각이 들었다. 저도 정말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아이에게 엄마가 뇌물을 받은 정치인이라는 것을 남기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는 하늘이 도와 무죄를 받았고 시계사건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의 기간을 다 지내고 지방선거 승리로 복권이 됐다.
박지원 대표의 사건을 보며 솔직히 유죄인지 무죄인지 저는 모른다. 그러나 저는 박지원 대표를 믿으려 한다. 제 지인이 상을 당해 문상을 갔더니 저와 친하다고 생각했던 분이 “나는 당신이 유죄인지 무죄인지 모르지만 나는 당신을 믿는다”라고 말했을 때 정말 많이 상처를 받았다. 저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일 수 있다. 26살에 이 당에 와서 저의 모든 것을 다 걸고 싸웠다. 김대중 대통령 때도, 노무현 대통령 때도 그랬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시절에도 모든 것을 걸고 싸웠다. 정치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작은 아이가 5살 때부터 부대변인을 하며 밤12시까지 돌아다니는 세월을 살았다.
그렇지만 정말 너무너무 가슴이 아팠던 일이 있었다. 그 2년 동안 법원으로 검찰로 변호사 사무실로 종종거리며 다닐 때 박영선 의원이 중심이 돼서 18대 의원 여러분들의 모금을 통해 변호사 비용을 마련해주셨다. 그렇지 않았으면 저는 파산했을 것이다. 그 2년 기간 동안 ‘얼마나 힘드냐’, ‘재판은 어떻게 되어 가냐’고 전화해주는 당 지도부도 없었고, 동료 의원들도 없었다. 길고 긴 지옥 같은 시간을 살아냈다. 당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오늘도 그런 생각을 한다. 박지원 대표에 대해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박지원 개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박지원 의원이 원내대표 선거에 나왔을 때 찍어주지도 도와주지도 않았다. 박지원 개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제1야당의 대표이기 때문에 이런 탄압이 있다고 본다. 저도 별거 아니다. 그러나 당시 상대후보의 대변인이었기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한다. 또 노태우 대통령 선거 이래로 상대 당대변인에게 이렇게 한 전례가 없다. 그만큼 이명박 대통령은 아주 특이한 분이다. 저처럼 당한 분이 참 많다. 여러분은 한명숙 총리만 기억할 것이다. 총리이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도와줬다. 그런데 조일현 의원도 그렇게 당했지만 결국 무죄 받았다. 최용규 의원도 당했다. 그 사이 많은 병을 얻어 암으로 돌아가셨다. 당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우리가 서로를 믿고 손을 잡아주고 어려운 국면을 돌파해야 한다. 저처럼 너무 힘들고 외로운 혼자만의 싸움을 우리 하나하나가 모가 겪게 해서는 안 된다. 나치가 유대인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유대인이 아니니까,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니까’ 마지막에 자기한테까지 왔을 때 더 이상 자기를 위해 얘기해줄 사람이 없다는 얘기 많이 들었을 것이다. 저는 이름도 없는 원외였기 때문에 쉽게 잊었을지 모르지만 박지원 원내대표는 개인이기도 하지만 우리 의원들의 대표다. 우리가 지키지 않고 다 내주고 나면 나중에 우리 중에 누가 남겠는가. 누가 당을 위해, 누가 이 진영을 위해 몸을 던지며 싸우겠는가. 다소 힘들고 생각이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싸움의 국면은 함께 손잡고 넘어주셨으면 한다. 박지원 대표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동지이기 때문에 함께 손잡고 넘어주셨으면 한다.
■ 김재윤 의원
제가 지난 대정부질문 이후 어떤 분이 저를 만나서 하시는 말씀이 “또 대검 중수부 조사받는 것 아니냐”는 말을 했다. 제가 “왜 그렇습니까.”했더니 “지난 번 김황식 총리와 5.16 관련해서 설전을 벌여 정권이 찍어서 표적수사 하는 것 아니냐”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 국민들이 검찰권력을 바라보는 시각의 하나다.
제주도에 내려갔더니 어떤 분이 억울한 민원이 있다면서 찾아왔다. 이 분이 부당하게 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통장사본을 검찰이 제출했다. 그런데 제출한 통장사본은 그 사람 것이 아닌 다른 사람 것이었다. 그러면 그 분은 당연히 무죄거나 누명을 벗겨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결국 그 분은 유죄였다. 검찰이 그 사람을 유죄로 만들었다. 그 분이 “저는 바랄게 하나도 없다. 저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시고 검찰을 바로 세워 달라.”고 했다. 이게 대한민국의 검찰에 대한 자화상이다.
박지원 대표의 건은 박지원 대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다. 이 자리에 계신 분,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 박지원 대표의 일정을 보면 제가 3년 5개월 동안 조사받은 대검 중수부 그대로였다. 언론에 나오고, 검찰이 소환요구를 하고 안 나오면 체포영장을 발부하겠다고 하고 그대로다. 저는 대검 중수부 조사를 3년 5개월 동안 받았다. 결국 무죄 판결 받았다.
대검 중수부나 정치검찰이 조사하는 경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정권에 미운 털이 박히거나 눈엣가시거나 아니면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할 때이다. 두 번째는 물타기 수사다. 권력이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사건이 터지면 야당 한명 숫자에 맞춰 반드시 물타기 수사한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대표적으로 표적수사+물타기 수사다. 저도 한나라당으로부터 대검중수부에 고발당했다. 대정부질문에서 BBK 질문을 했는데 고발당했다. 저는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18대 총선에서 야당이 참패했다. 젊은 의원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저는 순진하고 순수한 의원이었다. 투쟁력도 없던 의원이었다. 그래서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할 말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용기를 냈다. 그런데 18대 총선에서 젊은 의원들이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 제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첫 번째는 언론장악저지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그 당시 위원장이 천정배 위원장이었다. 천정배 의원은 4선이었고 저는 재선이었다. 젊은 제가 일해야 했다. 청와대, 감사원, 검찰청, KBS 안 가본 곳이 없다. 갈 때마다 이명박 정부를 질타했다. 그 당시 개혁과 미래라는 젊은 국회의원 모임을 만들었다. 제가 간사를 맡았는데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 국민적 분노를 자아내고 있을 때 국회의원은 무얼 하느냐고 국민들이 질타했었다. 그래서 국회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광화문에서 촛불이 여기저기 밝혀지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커지기 시작했다. 촛불 행렬에 젊은 의원들이 갔었는데 국민들이 국회의원들은 뭐하냐고 했다. 국민들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고 각종 최루액에 눈물을 흘릴 때 국회의원은 뭐하냐고 했다. 그래서 민주당에서 국민보호단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안민석 의원이 단장이었다. 안민석의원이 경찰에 맞았는데 결국 폭행죄로 벌금을 냈다. 안민석 의원이 경찰에 맞아서 제가 국민보호단 단장을 맡게 됐다. 그 이후에 촛불문화재에 매일 나갔다. 많은 분들이 몸조심 하라고 걱정했었다. 그러나 저는 떳떳하고 당당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했다.
그 이후에 몇 가지가 더 있는데 당시 한나라당에 계신 모 중진의원이 저한테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8월 19일 북경올림픽에 다녀오던 날 저 보다 먼저 동생이 대검 중수부에 체포돼서 조사받고 있다고 했다. 안민석 의원과 제가 대검중수부에 갔었다. 결국은 저를 겨냥한 것이다. 그 이유는 딱 하나다. 김재윤 의원이 입법로비 대가로 3억 원을 수수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영리병원을 허용하기 위한 입법로비라고 했다. 그러나 영리병원은 법으로 허용돼 있었다. 그러니까 바꿨다. 제가 무언가 새로운 증거를 대며 그렇지 않다고 하면 검찰이 또 바꾼다. 검찰이 저를 기소한 것은 하나다. 허위진술, 거짓진술 하나로 저를 기소했다. 물론 체포영장 청구한다고 해서 국회로 보냈다. 그 당시 김재윤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많은 의원들이 공감했지만 저도 고통스러운 것은 깨끗한 정치인, 무균 정치인이라고 얘기를 듣다가 이렇게 뒤집어쓰니까 저 자신이 극도로 제명에 못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람들을 볼 때 마다 ‘정말 저 사람 받은 거 아닌가, 착했던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김재윤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믿어준 것이다. 결국 김형오 국회의장도 수용하지 않아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했다. 제가 영장실질심사에 가서 결국 영장이 기각됐다.
제가 무죄를 받아서 구구절절 얘기하지 않겠다. 제가 만약 이 정권의 부당한 압력으로 구속되면 곡기를 끊고 내 죽음으로 나의 의로움, 나의 결백을 입증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의원 여러분께서 누구에게나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 돈 빌려도 입법로비, 법 개정해준다고 하고 돈 받은 걸로 걸려든다. 뇌물죄, 알선수재죄가 된다. 국회의원도 이런데, 선량한 국민들이 억울한 일이 많다.
검찰이 이런 얘기를 한다. 텔레비전 보면서 정부를 세게 비판하는 사람들이 나오면 ‘한번 손볼까. 작업할까’라고 얘기한다고 어떤 변호사에게 들었다.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은 검찰을 바로세우는 일이다. 박지원 대표님도 허위진술에 의존하는 것이다. 제가 재판받으면서 ‘사람이 이렇게 거짓말 할 수 있구나. 사람이 저렇게도 거짓말 할 수 있구나.’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것은 한명숙, 김현미, 저 개인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자 국민 모두의 일이다. 1% 권력에 아부하고 눈치보고 권력이 시키는 대로 하는 정치검찰 개혁해야 한다. 한명숙 총리, 저를 조사했던 대검중수부 검사들은 다 영전했다. 판사들이 정치인에게 무죄판결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권력에 미운털이 박혀서 승진을 못 할까봐 라고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사법개혁, 정치검찰개혁 누가 하겠나. 국회가 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실 때 우리 민주당이 제대로 정치검찰 개혁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났겠는가. 그 당시 우리가 못한 것이다. 검찰로비 받아서 못하고 두려워서 못한 것 아닌가. 해야 한다.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한다. 정치권이 해야 한다. 지금 정치는 사라지고 검찰 권력만 있다. 검찰권력 제어할 힘이 누구에게 있는가. 국민이 부여한 국회에 있다. 국회가 못하면 그 누구도 못한다. 억울한 국민이 더 생기지 않도록 힘을 내서 해야 한다. 지난 날 검찰개혁 했으면 오늘 이런 일은 없다. 의원 여러분께서 힘을 한데 모아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
■ 김경협 의원
저는 정치 입문도 전에 선거를 며칠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이미 몇 개월 안 된 일이라서 기억할 것이다. 당시의 상황을 한 번 쯤 짚어볼 필요가 있다. 당시의 시기로 보면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이 박희태 의장과 청와대 김효재 수석으로까지 확산되던 상황이다. 그리고 바로 저의 선거사무실을 압수수색하던 날은 그날 저녁에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한 날이다.
압수수색을 진행했던 근거는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의 CCTV에 찍힌 화면이었다. 뭔가 봉투를 여러 사람에게 주는 장면이었다. 당시에 일부에서는 3일 만에 끝나서 일회성 해프닝으로 얘기한 사람도 있었는데 일회성이 아니라 검찰이 고도의 정치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의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을 발표하기로 한 날, 그것이 청와대와 국회의장까지 확산되는 상황에 민주당을 끼워 넣고 싶었고, 그 상황에서 CCTV 화면만 갖고 압수수색이 전격 진행됐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검찰 발표는 뒤로 밀리고 모든 톱뉴스는 민주당 돈 봉투와 연관된 김경협 압수수색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검찰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했다.
압수수색을 3시간 동안 당했고 참고인 소환도 갔다. 초대장을 들고 갔고 CCTV 화면을 보면서 봉투를 받은 사람, 알 수 있는 사람은 다 얘기했다. 문제는, 봉투를 받은 사람들을 확인하면 초대장이 들었는지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그 때 잠깐 나오면서 검찰 내부에서 들은 얘기가 돈 봉투일 가능성이 없다는 얘기도 들었다. 특정 검찰 인맥이 압수수색을 강행했다고 얼핏 들었다. 또 하나는 KBS 보도를 근거로 했다고 했는데, KBS 보도는 화장실에서 돈 봉투가 오갔다고 되어 있다. 더 신기한 것은 KBS가 보도했다고 했는데 제보자가 나오지 않았다. 일설에 의하면 제보자가 검찰이었을 가능성도이고 검찰이 그것을 갖고 KBS가 보도했고 그걸 가지고 다시 수사한 것이라고 한다. 전형적으로 계획된 수사가 진행된 것이다.
참고인 조사를 3시간 동안 받으면서 모든 얘기를 다 했는데 끝나고 나오면서 보니 전혀 제가 해명한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돈 봉투와 초대장을 구분 못할 줄 아느냐는 검찰 측 주장만 나왔다. 3일째 아침 11시쯤에 검찰이 무혐의라고 시인할 때까지 그랬다. 2시간 전까지 돈 봉투를 입증할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보도됐다. 화면이 선명해서 돈 봉투를 확신한다고 보도했다. 아니라고 시인하기 2시간 전까지도 3일 동안 그렇게 보도했다.
당시 저는 선거를 앞둔 상황이었다. 1인 시위를 포함해서 검찰 발표를 반박하는 보도자료를 내는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검찰과 붙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또한 처음 압수수색을 당하는 상황이었다. 초대장이니 믿어달라고 지인들에게 문자를 지인들에게 보냈다. 많은 분들이 믿는다, 힘내라는 답변을 보내주었지만 개중에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부터 시작해서 검찰 압수수색이 근거가 없을 리가 있느냐, 변명 말고 제대로 조사를 받으라는 답변도 왔다. 일단 검찰에서 무슨 얘기를 언론에 흘리든 압수수색을 하면 모르는 사람은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힘들었다.
명확한 근거 없이 소환을 통보하고 체포동의안을 요구하면 국회는 무조건 동의해야 하는가. 이것이 국회의 쇄신인가. 누구든지 어디서 잠깐 들은 얘기, 어디서 나온 소스하나로 체포동의안을 제출하면 국회는 무조건 다 동의해줘야 하는가. 이 문제는 다시 명확히 생각해야 할 문제다. 그리고 3권 분립이 명확한 나라이지만 행정부의 권력의 우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국회의 입법권 문제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체포동의안만 내면 무조건 동의하고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국회가 대응하지 못하고, 그래서 국회 쇄신을 명분으로 입법권을 약화하는 것이 진정한 국회 쇄신인지, 아니면 입법권에 대한 심각한 훼손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검찰개혁을 제대로 준비해서 당 차원에서 제대로 추진했으면 한다.
2012년 7월 30일
민주당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