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발언
비상대책위원회 기자간담회 모두발언
비상대책위원회 기자간담회 모두발언
□ 일시 : 2013년 5월 2일 오전 11시
□ 장소 : 국회 당대표실
■ 문희상 비대위원장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단편 소설이지만 아주 인상적이고,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그걸 처음 읽었을 때 그 울렁거림, 아베체데 자기 국어를 잊지 않으려고 마지막 수업을 했던 게 생각이 난다. 특히 앞에 계신 분들은 대체로 아마 우리 야당팀 중에서도 대체로 말진인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동거동락을 같이 한 입장에서 마지막 날 같이 마주보고 앉았다는데 큰 의미 부여를 하고 싶다.
지금 넉달이라고 했는데 실질 114일 간이다. 114일간의 민주당 비대위 활동이 마감되는 순간이다. 아주 만감이 교차한다. 석달 보름간의 비대위 활동은 한 마디로 성찰과 혁신의 대장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1월 14일날 첫 번째 회의가 있었고 오늘까지 47번 회의를 했다.
비대위 첫 회의하던 날, 아침 일찍 현충원에서 민주당 당원, 국회의원, 당직자, 상임위원을 포함한 모든 당원이 전부 참배한 것이 생생하다. 그때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국민여러분께 사죄와 참회의 삼배를 올렸다. 글자 그대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석고 대죄했다. 그날도 얘기했지만 비대위라는 게 무슨 대단한 권한을 가졌거나, 영화를 누리는 자리는 결코 아니라는 것은 여러분이 더 잘 안다.
비상대권위원회도 아니고 도깨비 방망이 가진 것도 아니고, 그 때 내가 얘기한 건 알라딘의 요술램프 가진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오죽하면 비대위를 구성하게 되겠는가 라는 것이 민주당의 현주소였다. 대선참패라는 그런 국면을 앞두고 민주당이 존폐의 기로에 섰다, 존망의 기로에 섰다고 모두 얘기할 때 그래도, 다시 올라야 한다는 식으로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첫 출범을 다짐했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고난의 십자가를 같이 매줬던 비상대책위원 한분 한분께 뜨거운 감사 말씀드리고, 늘 어려울 때 같이 해주셨던 언론 여러분에게도 뜨거운 감사 말씀 올린다.
비대위에는 3개 위원회로 출범했다. 첫째는 대선평가위원회다. 처절하리 만큼 냉혹한, 엄중한, 평가를 해달라고 외부 인사를 위원장으로 모셨고 그 분들은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그래서 80일에 걸쳐서, 20여 회의 끝에 드디어 4월 9일 날 대선평가결과보고서가 발표됐고 비대위에서는 그냥 토하나 안 달고 그냥 접수했다. 누가 뭐래도 공식 문서를 우리당에서 인정한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다. 토를 달지 않고 그냥 그대로 접수했다. 이것에 대해서 다른 논란의 여지가 없다는 말씀을 분명하게 밝힌다.
완벽한 평가서라고 우린 얘기하지 않았다. 또 간간이 부족한 게 너무나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약속했기 때문에 외부위원장을 모시고 그 평가에 우리는 토 안 달겠다고 약속했고, 비대위는 그냥 접수했다는 사실을 말씀드린다. 더 이상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사실도 아니다.
또 정치혁신위가 1월 22일날 첫 회의를 시작으로 27번에 걸친 회의 끝에 민주당의 청사진, 블루프린트, 혁신의 청사진을 제시했고, 이것을 비대위는 3월 24일날 토 안 달고 그대로 접수했다. 전당대회준비위원회가 그동안 수많은 분과위원회까지 해서 합친다고 하면 100회 이상을 했고, 강령 당헌당규 개정안, 이것이 완벽하게 채택됐고 당무위원회까지 의결을 거쳤다. 오늘 47차 비대위에서 문안수정까지 완벽하게 마쳤다.
이 여러 가지 일련의 행사, 지금까지 한 일은 100가지 말이 필요 없고, 한 가지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의 정치혁신실행위를 구성했고, 옆에 계신 설훈 의원께서 총괄본부장을 맡아서 숱한 회의를 진행했고, 결정을 했다. 거기서는 첫 번째 스스로 바로 할 수 있는 일, 바로 정해서 바로 집행했다. 당헌당규 반영할 것 전부 당헌당규에 완전히 반영했다.
세 번째 법개정 통해야만 되는 혁신안은 정치혁신위원회, 정치쇄신위원회가 국회에서 할 수 있도록 모든 자료를 100% 넘겼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다했다. 평가는 국민이 하고 역사가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 F학점이다. 기대에 못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열심히 했다는 것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씀드린다.
그러면 그 혁신의 목표는 뭐였느냐, 국민의 신뢰 회복이 기본이었고, 그 신뢰회복이 돼야 대선평가도 극복이 되고, 대선에서 도전할 수 있는 힘도 생기기 때문에 그 신뢰회복이 기본적 목표다. 그 신뢰회복을 하기 위해서 혁신을 해야 한다, 그 혁신의 지향점, 저는 비대위원을 중심으로 3가지로 요약했다. 하나는 첫째 성숙한 정당이 되기 위해서 우선 야당다운 야당이 돼야 한다는 게 기본 목표다. 혁신의 기본목표다. 잘 아시다시피 비판과 견제는 야당의 기본 전제고, 그것을 소홀히 하면 국민의 신뢰를 잃고,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우리는 집권할 수 없다. 따라서 반대를 해도 확실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반대를 위한 반대는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못 박았다. 그것이 상생의 정치이고 혁신의 목표이다.
잘 아시는 대로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한 4인 회동을 제안했었고, 그것이 3인 회동으로 바뀌었고, 즉시 응했고, 그래서 열렸다. 거기서 합의한 게 여야정 6인 협의체를 만들자는 것이었고, 우리는 그것을 만들어서 했고, 정례화 하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국회 선진화법을 첫 사례로 그것이 지켜진 첫 사례로 정부조직법 문제가 있었고, 52일간의 서로 갈등 끝에 결론부터 얘기하면, 여야합의라는 전례를 만들었다. 난 그것을 커다란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정부조직법 법률안의 통과라는 것은 박근혜정부 출범 첫 번째 케이스이고, 선진화법이 생긴이래 첫 번째 케이스다. 여기서 모범으로 마무리되지 않으면 그 이후에 박근혜 정부 내내 국회와 정부간의 갈등은 계속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고, 어떻게든 여아가 합의하는 것을 전제로 최선을 다했다.
최근에 4월 임시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법안중 경제민주화 관련 하도급법 개정안, 정년연장법 등에 관한 법률안은 여야 6인 협의체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없었다면 그 법률 자체에 상정도 어려웠을 것이고, 상정됐어도 여야가 싸움하다가 결국은 청와대와 정부가 개입해서 직권상정의 유혹에 빠졌을 수밖에 없고 악순환에 빠졌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우리는 아주 중요하게 그 일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둘째, 성숙한 야당의 기본은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된다고 생각했다. 민주 반민주, 좌우, 극우 극좌, 이것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20세기적 낡은 냉전적 사고에서 유례한 것인데, 이거에 매달려서는 당내에서 계파간에 싸움하고, 여야가 싸움하고, 고 사회전체가 언론도 사회단체 좌우로 갈려서 싸움하는 이것을 근본적으로 뿌리 뽑지 않으면 정치는 한발도 못나간다고 생각했다. 사실이 그렇다.
이분법이 왜 나쁘냐고 하면, 편가르기이기 때문이다. 그것에 한 쪽에 줄을 서 버리면 모든 게 상대는 적으로 되고, 그 순간부터 가치판단은 잃게 되는 것이다. 정치부터 앞장서지 않으면 이 일은 해결이 안 된다고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고, 이념논쟁에 우리는 에너지를 쏟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생에는 여야가 없다는 것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한반도 긴장고조가 됐을 때 비대위 전체가 연평도에 갔다. 가서 한반도 평화안보선언을 했다. 튼튼한 안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이것을 만약에 지키는 것이 보수라면 분명히 말한다. 민주당은 왕보수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숱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이 매도당했고 감옥갔고 고문당했고 별짓을 다하면서 이룬 게 자유민주주의인데, 그것을 지키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고 지켰다고 하면 너무나 당연히 보수라고 한다면 우리는 왕보수다. 그러나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한반도 평화, 이것에 있어서 이것을 지키는 것이 좌라면 진보라면 우리는 왕진보이다. 토달지 않고 왕진보다. 우리는 그것을 최고의 가치로 했다. 오히려 극단적으로 치우쳐서 극좌 극우는 안된다라고 했다.
세 번째, 이제는 철저한 자료를 가지고 분석을 해서 정책을 개발해야지, 인기몰이 식 정책은 식상하다. 그래서 맞춤형 정책정당으로 간다, 민생현장에 간다, 현장정치, 생활정치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최선을 다했고 잘 아시는 대로 비대위는 주2회 국민 속으로 들어가서 민심 뻥 뚫는 소통정치를 위해 속풀이 정치를 했다. 재래시장 노인회 보육단체 사회복지공무원 비정규직 이루 말할 수 없는 단체에서 애로사항을 청취했고, 현장중심의 정당위원회를 직능조직으로 완전히 바꿨다. 전국 직능위원회는 당헌개정 사안이다. 거기에서 100개 이상의 직능분과위원회를 할 것이고 앞으로 그들한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당당히 줄 것이고, 거기서 비례공천에 상당히 주는 것을 당헌에 명기하는 혁신을 기했다.
국민의 생생한 목소리 듣기 위해서 24시 민원센터 가동해서 52일간 1,548건의 민원을 접수 처리했다. 그리고 명예센터장에는 40명 이상이 해주셨다.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비대위 끝나도 계속되기를 희망한다. 이 모든 작업의 모든 핵의 그 신뢰회복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그 신뢰회복은 혁신의 주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권한, 당의 권력은 당원에게 있다는 강령을 살렸고, 당헌도 개정했고, 그로인해 실천에 들어가 전국당원의 전수조사도 실시됐다. 20만 명 된다고 했더니 그것을 실제로 풀로 다 돌렸더니 4만 명에 불과했다. 우리의 아픈 현주소지만 우리가 스스로 깨고 나오지 않으면 혁신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전수조사에 많은 비용을 들여서 완성했다. 그리고 배가운동을 들어갔고 우리는 성공했다.
전수조사 한 권리당원의 숫자가 다시 그만한 숫자로 지금 바뀌고 있다. 그리고 또 그에 따르는 배가운동을 진행 중이다. 우리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민주당은 그만큼 호락호락한 정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60년 전통의 뼈대 있는 민주정당이다. 127명의 의원을 확보하고 있는 정당이다. 10년의 집권경험이 있는 수권정당이다. 5.4 전당대회를 계기로 우리는 하나가 될 것이다. 반성과 성찰의 새로운 승리를 일구는 장쾌한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스럽지 않는다. 비대위는 출발할 때 어떤 기득권도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비대위원의 평가는 국민과 역사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감사하다.
■ 설훈 비대위원
문희상 위원장께서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얘기를 하셨고, 이어서 현충원에서 맨바닥에 추운 날 국민께 사죄하던 그 말씀을 먼저 하셨는데 제가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하셨다. 왜 이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 비대위가 114일 동안 운영되면서 싸우질 않았다는 것이 기록에 남아야 할 것 같다. 과거의 우리당 최고위의 내용들을 보면 때때로 싸우기도 하고 고성이 넘쳐나기도 했다고 들었는데 비대위는 114일 동안 논쟁은 했지만 감정의 상처를 입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는 문희상 위원장 이하 위원들이 우리가 처한 엄중한 현실을 잘 이해하고 힘을 하나로 해서 당을 살리자는 뜻이 통했던 것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들 내부에서 보기에는 그렇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열심히는 했다. 열심히 했지만 열심히 한만큼 국민들이 알아주지 않은 것 같고 고생만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적어도 저희가 흘린 고생의 결과는 다음 지도부가 잘 받아서 매는 우리가 다 맞았으니 앞으로 매 맞지 않은 지도부가 탄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했던 것 아닌가 생각한다.
처음 시작할 때에 대선 패배에 대한 각오로써 많은 질책 있을 것이고 매도 맞을 것이라 각오했다. 그대로였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국민들은 잘 받아들이지 않으시려 하고, 아직 그 응어리는 안 풀린 것 같다. 이제 우리 비대위에 대해서 모든 허물을 지우시고 새로 출발하는 지도부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새로운 기대로 봐주기 바란다, 그래도 민주당이 희망이다. 127명의 의원들이 있고 어쨌거나 우리는 5년 뒤에 집권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의 따가운 비판은 있지만 당원들 우리들은 집권하겠다는 확신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 희망을 갖고 새 지도부를 뽑아서 새 지도부 중심으로 뭉쳐서 앞으로 국정에 임하고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자세를 가다듬을 것이라 생각한다. 열심히 했고, 다음 지도부가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지도부가 탄생하기 기대하겠다. 언론이 여러분 고맙다.
■ 김동철 비대위원
민주당 비대위 4개월에 대한 언론의 평가는 ‘절반의 성공이다’는 식으로 인색하게 봐왔다. 그러나 대선참패 직후 당내의 상호불신과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점에서의 비상상황 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주셔야 한다. 문희상 비대위원장께서는 어떤 당직, 어떤 국회직도 맞지 않겠다. 20대 총선에도 불출마 한다는 비장한 결의와 각오로 비대위원장으로서의 직을 수행해 주셨다. 민주당은 당원중심 정당이라고 얘기해왔지만 당원의 실체는 애매했고 부풀려져 있었다. 비대위는 역대 어느 지도부도 하지 못했던 당원정비를 과감히 해냈고 당의 초석을 쌓았다. 대선평가의 경우 일부 표현을 놓고서 과도하고 감정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 자체에 과감한 메스를 들이댄 것 자체가 평가돼야 한다. 수십 차례의 회의와 토론을 거친 당 혁신을 통해서 수많은 혁신과제를 발굴하고 이행했다. 무엇보다도 비대위의 중요한 성과중 하나는 보수진보가 1대1 대결 구도 하에서 중도층의 지지를 견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시대의 시대정신인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라고 하는 진보적 가치를 더욱 강화하되, 국가안보와 같은 공동체 존립의 문제에 대해서 민주당의 확고한 자세를 견지하는 쪽으로의 강령과 기본정책을 올바르게 적립한 것은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성과였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민주당 비대위 4개월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민주당을 변화와 혁신의 초석을 쌓는데 기여했다고 자부한다.
■ 문병호 비대위원
문희상 비대위원장님의 화합의 리더십, 중용의 리더십이 이번 비대위를 그나마 절반의 성공을 거둘 수 있게 한 동력이 아닌가 생각하고 위원장님께 감사드린다. 대체로 국민들이 정치권을 바라보는 시각은 100미터 전방 정도 되는 것 같다. 이번 비대위가 가까이에서 보면 많은 노력을 했지만 100미터 떨어져서 봤을 때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소지가 있었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다만 저도 비대위 들어올 때는 좀 더 혁신하고 당의 변화를 이끄는 일을 하려고 했는데 막상 지난 비대위 활동을 돌이켜보니 민주당의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느꼈다.
아직 수술할 단계가 아니다. 수술하기 위해서는 영양보충도 해야 하고, 전 단계로써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할 정도로, 즉각 수술 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히 중병에 걸려있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비대위차원에서는 수술을 못했다. 우리 비대위는 수술하기 전에 영양분을 주사하고, 수술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정도의 역할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본격적인 당의 수술은 차기 지도부에 맡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차기 지도부가 결국 평가받는 것이 10월 재보선이기 때문에 5개월 동안 과연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지지를 회복할 수 있을 정도의 과감한 개혁과 혁신을 할 수 있을지 사실 걱정스러운 측면이 있다.
문제는 시간이 우리편이 아니다. 과거에는 시간이 우리편이였다. 제1야당으로서의 기득권이 있었고 그것을 위협할 만한 외부의 존재가 없었다. 그래서 시간이 가면 국민들은 정부여당에 대한 견제, 비판 쪽으로 많이 돌아서기 때문에 야당으로서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는 측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우리편이 아니다. 외부에 안철수 현상이라는 새로운 정치를 내세우는 민주당에는 경쟁적이고 위협적인 그러한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단기간에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처방이 필요하다고 진단하고 싶다. 이런 과제들에 대해서 비대위가 나름대로 노력하고, 일정부분 성과도 냈다고 보고 나머지는 차기 지도부에서 좀 더 과감한 혁신과 변화를 통해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치가 그런 건지, 한국 정치가 그런 건지, 쉰 반찬 론을 항상 말씀드린다. 국민들은 밥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정치의 밥상에는 쉰 반찬, 더 쉰 반찬, 썩은 반찬 밖에 없다. 이것이 정치권의 본질적, 근본적인 문제인지 한국정치의 문제인지 해답을 내지는 못했지만 민주당이 개혁과 혁신을 통해서 국민들께 좀 더 신선하고 맛있는 반찬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정당이 되기를 바라고 앞으로도 저는 계속해서 어떤 지도부가 들어서든 원칙을 가지고 협조도 하고, 비판도 하겠다.
■ 박홍근 비대위원
그동안 비대위를 지켜봐주시고 성원해주신 국민여러분과 당원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이번 만큼 어려운 상황에서 출발했던 비대위는 없었을 것 이다. 주자 만루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중간계투로 투입됐다. 비록 시원하게 삼진 처리를 하지는 못했지만, 큰 실점 없이 마무리 하고 바통 터치를 하는 순간이라 생각한다. 거기까지는 아마 문희상 비대위원장의 민주적 리더십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2월초에 있었던 국회의원들과 전체 지역위원장간의 1박 2일 워크숍에서 모든 것을 열어놓고 토론했던 것은 문희상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들의 소통의 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비대위원들 또한 자기의 주장보다는 당의 화합, 혁신을 위해서 생각을 모으는 태도를 취해주셨다. 그 배경에는 당이 너무나 위중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이 반영됐다고 생각한다.
구지 평가를 하자면 단순 관용 비대위도 아니고, 혁신을 완성하는 비대위도 아니었다. 그 중간쯤이었다. 그 나머지 부분은 새로 들어서는 지도부의 몫이 될 것이다. 저는 국민들이 우리 민주당에게 불신하고 있는 것, 당원이 당 지도부에 대해서 불신하고 있는 것 보다 더 심각한 신뢰의 문제는 핵심당직자, 국회의원들 간의 불신의 문제가 너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끼는 과정이었다. 이 문제부터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토론하다보면 생각의 차이가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관계의 역사 때문에 불신이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하나 아쉬움은 비록 원내의 일이기는 하지만 정치혁신을 보다 가속화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기득권 포기를 포함해서 국민에게 신뢰를 받는 정치권으로, 국회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들을, 속도를 내지 못했다는 것에 아쉬움을 갖는다.
이번 비대위를 마지막 비대위로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 민주당이 비대위 체제가 반복되지 않는 믿음직하고, 든든한 수권대안정당이 되기를 바란다. 끝으로 비대위를 하는 동안 초선의원으로서, 막내 비대위원으로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힐 수 있었다.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런 경험과 배움이 헛되지 않도록 그리고 당의 혁신과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더욱 전진하겠다. 그동안 성원해주신 언론인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배재정 비대위원
비대위가 드디어 끝이 난다. ‘드디어’라고 말씀을 드리는 것은 그만큼 드라마틱하고 많은 일이 있었다는 뜻으로 드리는 말씀이다. 박홍근 비대위원도 말씀 하셨지만 저 또한 초선으로서, 지역구가 없는 비례대표로서, 정치 초년병으로서 비대위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이 개인적으로는 큰 영광이었다. 비대위가 구성될 만큼 심대한 위기상황에서 당의 어려움을 수습하고 다음 발걸음을 준비하는데 사실 저 스스로는 많은 힘을 보태지 않은 것 아닌 가하는 반성한다. 그렇지만 관록이 있으신 문희상 비대위원장님을 비롯한 선배 비대위원님들의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서 많은 배움을 얻었다. 좀처럼 얻기 힘든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저 스스로는 비대위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나름 여러 가지 성과들을 냈다고 생각한다. 당원정비 문제, 당원개정, 민주정책 연구원의 바로 세우기 등 당의 기본적인 골격과 구성을 바로 잡는데 노력했다. 문 위원장님 말씀대로 민주당의 혁신과 개혁을 위한 레일을 까는 작업을 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여성의 정치참여확대를 위한 혁신안을 통과시킨 것 또한 큰 의미가 있다. 반면 안타까운 점도 많이 있다. 국민들께서 민주당의 분열을 가장 염려하시는 가운데, 갈등의 뿌리를 뽑지 못했다는 자책을 갖는다. 특히 대선평가과정, 대선자금 집행 문제 등 아름답지 못한 모습들이 노출되면서 되레 국민들의 불신을 산 것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깊다. 이 부분은 5월 4일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새로운 지도부는 물론이고 저를 포함한 민주당의 127명 모든 의원님들, 민주당원 전체가 모두 끝까지 손을 놓지 않고 해결해야할 중차대한 과제다.
개인적으로 저는 지난 4.24 재보궐 선거에서 영도구 재선거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서 부산에서는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인바 있다. 재보선을 마치고 참패를 알게되면서 부산에서 서울로 오는 기차 안에서 한 신문의 만평이 페이스북에 올려져 있는 그림을 봤다. 우리 비대위원장께서 참담한 모습으로 재보선 패배결과를 보고 있는 만평이었다. 그 만평을 보면서, 그리고 재보선 패배의 현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솔직한 제 감정이었다. 우리 민주당이 아직도 여전히 바닥을 치지 못한 것인가. 국민들께서 이렇게 민주당을 미워하고 싫어한다면 우리는 더 죽어야 살 수 있는 것인가. 그런 심각한 고민에 빠졌었다. 그 고민을 안고 앞으로 지도부가 아닌 한사람의 의원으로서, 민주당원으로서, 정치인의 한사람으로서 열심히 임하겠다.
사실 정치에 입문한 이후에 계속해서 끈임 없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 있다. 앞으로 정치와 언론이 같은 지향을 가지고 나갔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다. 언론의 본령도 결국 국민을 위하고, 사회를 위하고, 국가를 위한 조타수 역할이라 생각한다. 정치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더 나은 나라, 더 나은 사회, 국민들이 더 살기 좋은 그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정치가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언론과 정치가 같은 방향을 보고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마지막 말씀으로 드린다.
■ 김영록 사무총장
비대위기간 114일 동안 정말 많은 일을 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님 정말 일 욕심이 많으신 분이다. 그동안 비대위 기간 동안 많은 일을 처리했는데, 그중에서도 평시에도 엄두를 낼 수 없었던 당원 찾기 배가운동을 했던 것은 대단한 성과라 생각한다. 당원 찾기를 통해서 권리당원을 12만 명을 확실히 정비해서 당 지도부 선거때 권리당원이 ARS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한 것 자체가 큰 혁신이었고 큰 성과였다. 210만 당원이 정비하면 100만이 될지 모르지만 100만 당원이라도 기반이 튼튼한 당원중심의 정당을 통해서 민주당이 다시 기본이 충실하면서도 혁신하는 정당으로 태어나겠다는 그런 각오를 통해서 열심히 일했다. 이번 100만 당원이 배가운동을 통해서 200만 당원이 될 때까지 열심히 하겠다.
사무처에서도 인사혁신, 조직혁신 방안을 비대위 기간 동안 많은 토론을 거쳐서 마련했다. 그 부분을 실행하는 것은 차기 지도부에 넘기도록 했지만 이런 부분까지도 비대위에서 열심히 노력했다는 말씀 드린다. 그리고 이번 비대위가 활동하는 기간 동안 당내에 회의와 토의가 활발했다. 비대위 회의는 47차에 걸쳐서 열렸었고, 전준위가 19차, 정치혁신위, 대선평가위가 21차 회의가 있었고 정치혁신실행위도 세미나와 회의를 21차에 걸쳐서 당내 활발한 토의가 있었다. 저도 중앙위, 전준위, 비대위, 정치혁신실행위에 참여했지만 과거처럼 고함이 나기보다는 치열한 토론을 통해서 거의 모든 부분에 합의 도출이 됐던 성과가 있었다.
밖에는 이상하게 민주당이 계파싸움 한다고 비쳐서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실제 내부에서는 활발한 토론과 합의를 도출해서 여러 가지 당내 정치혁신과제, 현안과제를 풀었던 기간이었다. 일사불란한 정치는 사실 죽은 정치다. 우리 국민들께서는 이제 민주당이 싸움하는 정당이 아니고 새롭게 태어나는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졌던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는 민주당으로 기억해주길 바라면서 앞으로도 지속적인 지도편달이 있기 바란다.
2013년 5월 2일
민주당 대변인실